은하철도999 결말과 세계관 : 기계 몸으로 영생, 바이블과의 비교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999 결말과 세계관에선 기계 몸으로 영생을 할 수 있다. 바로 늙어 죽는 원래 몸을 기계 몸으로 바꾸면 가능하다는 설정이다. 이 설정의 기본은 바로 영혼이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전제가 있다. 바이블도 주로 다루는 대상은 ‘영혼’이다. ‘사람’에 대해서 은하철도999와 바이블이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블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 대해선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은하철도999 결말, 사람은 영혼이 전부?

은하철도999 세계관, 기계 몸으로 영생하는 부자들

은하철도999의 줄거리는 지금 봐도 좀 충격적이다. 잘 사는 사람은 몸을 기계로 바꿔서 영생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의 몸으로 고생하다가 늙어 죽는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기계 몸을 가지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 이런 욕망을 해결해주는 곳이 바로 프로메슘 행성이며 이 행성을 데려다 주는 기차가 바로 은하철도999이다.

주인공 철이와 엄마 가난했다. 가난한 철이의 엄마는 아들에게 기계 몸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이 둘은 은하철도999가 출발하는 메갈로폴리스라는 도시로 향한다. 하지만 가는 여정에서 철이는 엄마 잃은 소년이 된다. 엄마는 인간 사냥꾼 기계 백작에게 살해 당한다.

철이는 메텔이라는 미스테리한 누나(?)의 도움을 받아서 은하철도999에 탑승하게 된다. 그리고 은하철도999를 타고 엄마의 소망인 기계 몸을 가질 수 있는 프로메슘 행성을 긴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과정에서 많은 일들을 겪고 프로메슘 행성에 도착한다. 하지만 기계 몸은 허울 좋은 꿈에 불과 했다.

은하철도999 결말, 기계 몸으로 영생해도 불행(?)한 존재 인간

기계 몸을 얻은 부자들은 영원한 생을 누리기에 삶의 목적 없이 흥청망청하며 살고 있었다. 이를 본 철이는 인간은 삶이 유한하기에 가치가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사고를 친다. 결말은 찾아보면 자세히 나온다. 은하철도999는 사람의 영혼이 진짜 ‘나’라고 말한다.

몸은 그저 영혼을 담는 곳에 불과하다. 그래서 기계 몸으로 바뀌어도 ‘나’로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시작하는 전통적인 관점과 일치한다. 몸이라는 집 안에 영혼이 담겨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흡사 성경도 영혼과 몸을 이런 관점으로 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바이블, 생기가 불어넣기 전 아담도 ‘사람’

바이블은 당연히 영혼과 몸을 구분해서 보고 있다. 영혼도 영과 혼으로 구분하여 사람이 영,혼,몸 세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바이블은 몸을 영혼을 담는 그릇 정도로 보지 않는다. 이는 바이블 창세기에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는 장면에서 엿볼 수 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아담을 만든다. 흙으로 아담을 만든 다음에 생기를 그의 코에 불어넣어서 아담은 활동을 시작한다. 이 생기를 불어넣는 과정에서 영이 아담 안에 들어간 것으로 본다. 이 장면에서 의외의 표현이 등장한다. 

바로 생기를 불어넣기 전 흙으로 만든 아담을 사람(man)이라고 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었더니 ‘사람’이 아닌 ‘생령(living soul)’이 되었다고 했다. 생기를 불어넣어서 영이 들어가기 전의 존재를 이미 ‘사람’이라고 칭한 것이다.

바이블, ‘교회’도 한 사람의 몸

이런 관점은 바이블 신약 27편 절반을 차지 않는 바울의 편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은 주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이뤄진 교회에 편지를 썼다. 그 편지들은 주로 대상인 교회가 겪는 문제에 대한 것을 다룬다. 그 문제를 정리하면서 그리스도와 그 몸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바울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하나의 ‘새 사람(new creature)’을 지었다고 바울 서신에서 기록했다. 그 ‘새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가 머리이고 그를 믿은 사람들의 무리인 ‘교회’가 그 몸이라고 했다. 이 ‘교회’는 바울 서신에서 신부 또는 성전으로도 표현하고 있다. 그만큼 몸이 사람의 존재 자체임으로 전제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은하철도999의 세계관과 바이블을 비교해 보면서 몸은 단지 영혼의 담는 그릇인지 둘 다 모두 ‘나’라는 사람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최근의 뇌과학은 ‘뇌’가 ‘나’일 뿐 영혼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영혼의 존재를 그렇게 쉽게 부정하긴 어렵다.

바이블의 영혼과 몸 모두를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상인 ‘교회’에 대한 설명이 이해가 가능한 듯싶다. 바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먼저는 아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같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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