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로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환혼은 중국무협소설과 비슷하다. 이야기 흐름이나 캐릭터, 주요 소재 등이 중국무협소설 흔히 말하는 무협지와 많이 닮았다. 중국무협소설 중에 가장 있는 작품 중에 하나인 김용의 ‘의천도룡기’와 비교해보면 환혼이 무협소설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비교를 통해 드라마 ‘환혼’이 단순히 무협지를 모방했는지 아니면 여러 요소들을 차용하여 개성있는 시리즈를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모두가 탐 내는 물건 등장(중국무협소설 vs 환혼)
환혼에선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같은 ‘얼음돌’이 등장한다. 작품의 배경인 ‘대호국’이라는 가상 국가의 ‘술사’라고 불리는 고수들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이다. 이 ‘얼음돌’은 200년전 하늘에서 내려온 돌로 사람의 영혼을 서로 바꿀 수 있는 환혼술에 쓰이는 취혼향을 만들어낸다. 또한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닌 물건이다. 이미 200년 전에 봉인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세상에 드러나자 다시 한 번 세상(대호국)은 혼란에 빠진다.
의천도룡기에서는 의천검과 도룡도가 등장한다. 이 두 물건을 가진 사람은 무림의 지존이 되어 천하를 호령한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이를 가지기 위한 무림 고수들간의 암투와 살육이 반복된다. 주인공인 장무기도 이 도룡도를 서로 가지기 위한 암투 과정에서 부모님을 잃고 어린 시절 죽을 위기를 겪는다.
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물건들은 사람들의 욕망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큰 힘을 가지려고 하는 욕망을 가진 자들의 암투 속에서 힘의 균형을 잡아서 세상을 안정시키려고 하는 자들의 갈등과 대결이 이어진다. 의천도룡기가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원나라에서 명나라 교체기의 중화가 강조되는 반면 ‘환혼’은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하여 인간이 욕망과 인간다움의 균형이 강조되는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이 최고 고수가 되는 성장 서사
의천도룡기와 환혼의 남자 주인공은 모두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다. 출생의 비밀을 오랫동안 감추며 살아간다. 핏줄 덕분인지 모두 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 타고났다. 의천도룡기의 주인공 장무기는 무림의 핵심 종파인 무당파 5대 제자 장취산의 아들이다. 환혼의 주인공 장욱 역시 환혼한 왕이 최고 술사인 장강의 몸에 들어가 낳은 아들이다.
장무기는 앞서 살펴본 도룡도를 둘러싼 무림의 암투로 어린 시절 고통을 받는다. 장무기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죽음을 목격한다. 그 과정에서 ‘현명신장’이라는 기술에 당해 시한부 인생이 된다. 현명신장에서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림 최고의 내공심법인 구양진경을 익혀야 된다. 여러 고생을 하다가 우연히 않은 계기로 구양진경을 익혀 무림 최고의 고수가 된다.
‘환혼’의 장욱의 경우 장강의 몸으로 환혼한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상을 혼란하게 할 수 있는 운명이라고 판단한 장강은 갓 태어난 장욱의 기문을 막아서 무예를 연마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당대 최고 술사(무협지로 말하면 무림 지존)인 장강은 아무도 장욱의 기문을 풀어주지 말라고 선언하며 떠나버린다.
그는 여주인공인 환혼술로 낙수의 영혼이 들어간 무덕이를 만난다. 자신의 힘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무덕이와 술사가 되고 싶어하는 장욱의 이해관계가 맞으면서 두 사람의 위험한 사제 관계가 시작 된다. 무덕이는 장욱에게 독약을 먹여 술사들이 독약 치료를 위해서 기문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기문이 열인 장욱은 무덕의 도움으로 최고의 술사로 성장한다.
갈등이 증폭되고 해결되는 종파 간 회합
‘의천도룡기’와 ‘환혼’에서 무림 고수 또는 술사들의 모든 종파들이 회합하는 자리가 열린다. 이 자리는 이야기 흐름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단순히 주인공이 갈등이 있는 대상과 대결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다. 모든 종파들이 모여서 회합하는 자리에서 서로 간의 이해 관계로 인한 갈등이 드러나고 치열한 토론이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심화되어 피를 흘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고 정리되기도 한다.
의천도룡기에는 영웅 대회가 등장한다. 특히 마지막 영웅대회에서 소림사를 중심으로 장무기가 교주가 된 명교, 무당파, 아미파 등 무림의 종파들이 모인다. 도룡도를 둘러쌓고 문파 간에 얽힌 원한과 이해 관계로 서로 갈등이 극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등의 활약으로 갈등을 일으킨 숨겨진 진짜 빌런을 찾아내고 문파 간 갈등이 해소 된다.
‘환혼’에서도 ‘만장회’가 열린다. 이 만장회에서는 모든 ‘술사’들의 문파 수장들이 참석한다. 환혼 part1은 극의 막바지에 열린 만장회에선 왕과 각 문파 수장들이 얼음돌을 둘러싼 갈등이 대립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시 얼음돌로 과거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최 씨 집안의 음모가 드러난다. 얼음돌을 세상에 드러내어 혼란하게 만든 장강이 20년만에 돌아와서 죽음으로 자신의 과오를 책임진다.
이야기의 중심은 로맨스
환혼은 장욱과 무덕(낙수)의 러브스토리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살수가 된 낙수가 죽을 위기에 무덕의 몸으로 환혼한다. 무덕의 몸에 낙수가 환혼된 것을 알아본 장욱은 그녀를 종으로 사들이며 자신의 스승이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환혼되면서 술사의 능력을 잃어버린 무덕도 자신의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 요청을 받아드린다.
이후 무덕은 장욱이 술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다. 장욱은 뛰어난 술사가 되었고 무덕은 자신의 기력을 회복하여 능력이 회복되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마음은 사제 관계를 맺었던 각자의 목적과는 다른 길로 향하게 한다.
중국무협소설은 두말할 것도 없다.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무빙에서도 무협지는 로맨스물이라는 대사가 나올 정도다. 의천도룡기의 남녀 관계 로맨스는 좀 심각하다. 장무기는 네 명의 여인과 마음을 나누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무인도에서 어머니의 치마 폭에서 여리게 자란 장무기는 심각하게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다. 부모님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여행하는 과정에서 은소, 주지약, 소소, 조민 네 여인과 마음을 나누고 닥친 여러움을 해결하면서 초고수로 성장 한다.
이 외에도 ‘의천도룡기’에서는 장삼봉과 ‘환혼’의 마의 이선생과 같은 고령의 초고수가 주인공의 성장을 돕고 극의 흐름을 보이지 않게 끌고 간다. 이들은 등장할 때부터 세계관의 최강자이지만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역할은 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성장을 도우며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닮아 있다.
‘환혼’의 내러티브를 보면 전반적으로 중국무협소설을 상당 부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혼’은 ‘대호국’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물’을 무공으로 다루는 ‘술사’라는 존재를 등장시켜 무협소설 틀에서 자유롭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의 고착화된 신분 질서에서 벗어난 가상의 나라는 설정으로 신분 질서는 있지만 신분간 격이 없는 설정을 더했다.
이런 신분 간의 자유로운 대화에 현대 말투가 더해져 왕의 아들 세자와 종의 신분인 무덕이와의 자유로운 대화와 관계 맺기를 가능하게 했다. 이른 입체성은 시대의 질서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무협지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이야기 전개를 보인다. 이렇듯 ‘환혼’은 중국무협소설의 핵심적인 설정을 차용하여 개성있고 흥미로운 판타지 가상 역사극 시리즈로 보인다.